나는 이때까지 살면서 남들보다 결과물을 빠르게 만들어내는 사람은 아니었다. 자세하게 말하자면 정확히 반대되는 사람이었다. 뭔가 우물쭈물하고 우유부단하고 결단을 내리기 어려워하는 내 특징은 나조차도 가끔 너무 답답하게 만든다.
나는 결정을 내릴 때 최대한 많은 정보를 바탕으로 여러가지 시나리오를 생각하고 최악의 사태까지 생각한 후에 행동하는 편이다. 그렇기 때문에 좋게 말하면 의사결정이 신중한 것 일태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결단을 내릴 때까지의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기 때문에 좋은 기회들도 놓쳐버리고 만다.
그리고 이렇게 결정을 미루고 미루어 나중에 돌아보면 시간은 많이 지나있고 나는 남들보다 늦었다는 생각과 함께 남겨진다. 나를 앞질러간 내 또래들. 과연 나는 왜 이렇게 축축 처지는걸까.
항상 이래왔던 것은 아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는 동급생들보다 모든 면에서 앞서갔다. SAT, AP, 내신, 대외활동 등 전부 빠르게 해서 조기졸업까지 할 수 있었다. 그때는 공부에 몰두하고 있었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현시점에서 생각해 보면 나는 그때 그냥 불안했던 것 같다. 그래서 옆을 보지 않고 나만 챙겼다. 해외 국제학교의 특성상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앞으로 평생 보지 못할 친구들인데 아쉬움이 남는다. 실제로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가 7년이 지났지만 나와 함께 졸업한 동기들과는 한 번도 대면하지 못했다 (물론 통화나 연락을 주고받는다). 고교 졸업 후 모두 본국으로 귀국했기에 드래곤볼처럼 전 세계에 퍼져있기 때문이다. 과거 남들보다 빠르게 달려온 대가가 주변을 살피지 못했던 거라고 생각해 본다면, 지금 조금 뒤처진 상태의 대가는 불안감인 것 같다. 영원히 뒤처져 있을 것이라는 불안감이다.
하지만 고교시절 내가 동기들보다 1년 앞서갔다고 현재까지 앞서있는 것이 아닌만큼 내가 지금 조금 뒤처졌다고 해서 미래에도 같을 것이라는 법은 없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뒤처짐에 대한 불안과 부담감은 앞서감에서 경험한 안도와 비교해서 너무나 크게 다가오는 것 같다. 과거 일시적인 앞서감이 장기적인 앞서감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지만 현시점에서 뒤처짐이 미래에도 뒤처지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기 어렵게만 느끼는 것이 인간인 것 같다.
이러한 빠름 뒤쳐짐 담론에서 비교적 자유롭기 위해서는 지금 나 자신의 위치와 목표를 잊는 두 지점을 구체화 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목표로 향하는 계단 한 칸씩 찾아 나간다면 빠름 느림과 같은 상대적인 개념이 아닌 나만의 절대적인 걸음을 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싶다. 제목과 같이 가장 빠른 시점과 늦은 시점은 두 개념에 유일하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현재로 귀결되기 때문에 현재에 집중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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