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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

헨리 데이비드 소로와 자유로운 삶

by 알마애플님 2024. 12.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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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에는 도서관에서 내가 관심 가는 책을 몇 권 빌렸다. 그중 눈에 띄었던 책은 월든의 저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에 대한 책이었다. 어떻게 보면 고등학생 시절 내가 가장 영향을 많이 받았던 문학 책이자 내 삶의 방향성을 설정해 주고 주체적인 생각을 가능하게 해 준 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월든'이라는 책을 집필한 인물이기에 해당 책을 빌리게 되었다.

 

책의 제목은 '내 인생의 주인으로 산다는 것'으로 한국 저자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철학을 한국 사회에 대입하여 해석한 제2차 창작물이다. 고등학생 때는 명확하게 가지고 있던 내 인생의 주체성은 대학교에 진학함에 따라 서서히 잊혀져 갔다. 단체 및 조직생활을 너무 많이 하다 보니 '나'라는 주체는 어느 순간 온데간데없고 큰 조직의 부품으로만 살아가야겠다는 생각만 머리에 가득했던 요즘 독보적으로 눈에 띈 책이다. 그리고 서서히 잊혀갔던 주체성 및 나다운 삶의 글귀를 일고 서서히 그게 뭐였는지 떠오르고 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주장의 본질은 '나의 기준에서 삶이 아니라고 판단되는 것들은 모두 버리고 삶이라고 생각되는 것만 남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삶의 본질을 찾기 위해 월든 호수에서 2년을 생활하며 의도적으로 (Deliberately라 표현) 삶을 개척하는 방법에 대해 독자들과 나누고 있다. 사회에서는 조직에 부합하지 못하는 인물은 외톨이라고 칭한다. 나는 이러한 견해에 동의한다. 타의적으로 사회나 조직에서 배제된 것은 소로가 말하는 것과 같이 의도적으로 고독을 선택한 게 아니기 때문에 주체성도 없고 의도도 없는 소외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소로가 행한 것처럼 어떤 행동이든 확신을 가지고 의도적으로 선택하면 사회나 타인이 뭐라고 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나의 주체적인 생각에 기반한 의도적인 행동이기 때문이다.

 

소로는 의도적 (Deliberation)의 반대말로 고요한 절망 (Quiet Desperaiton)이라는 구절을 활용한다. 의도적으로 선택하지 않은 삶을 사는 사람들을 가리켜 사용하는 말이다. 소로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거나 알아도 선택에 따른 책임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자신의 삶을 의도적으로 개척하는 것을 거부한다고 말한다. 대안으로 남들이 안전하다고 하는 길, 사회에서 추앙하는 길을 주체 없이 선택하여 고요한 절망 속에서 살아간다고 한다. 그리고 이는 책임에 대한 두려움에 대한 대가라고 말한다. 결정적으로 고요한 절망은 인간에게서 주체성을 빼앗아가기 때문에, 또 타인과 사회에게 자신의 인생에 대한 결정권과 책임을 전가하기 때문에 마음의 노예로 전락하게 된다는 것이다. 대다수의 사람은 '나만의 길'을 개척하지 못하고 사회의 평한, 타인에 시선, 결정적으로 내 선택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고요한 절망에 침식되어 살아간다.

 

이러한 생각들을 나의 삶에 대입해 보자. 과연 나는 25년간 내 삶을 살며 주체적인 결정들을 해왔는가? 10점 만점이라면 8점을 주고 싶다. 고등학교 시절 내 의지와는 다르게 타국에서 학창생활을 하는 등 주류에서 떨어졌지만 거기에서 좋은 친구들과 은사님들을 만나며 나름 나의 인생을 개척해 보려고 몸부림쳤다. 내가 10점을 주지 않은 이유는 대학생활 때문이다. 입시가 끝나면 안주하고 싶다는 마음이 강했기 때문에 집단이나 조직에 끼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커서 점점 나의 개성과 색깔을 잃어갔다. 결정적으로 내 인생의 주체성 또한 잃어가게 되었다. 지난 1년 동안 방황을 했지만 어떻게 보면 사회에 휩쓸려가지 않도록 나의 주체성, 정체성, 가치관 등을 찾는 귀중한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아직 이러한 모험은 끝났지 않았지만, 또 계속 이어지겠지만 소로의 철학을 다시 한번 접함으로 내가 망각했던 것을 다시 생각해 보고 '나 다움'에 대한 초석을 다질 수 있는 시간이었다. 나도 소로와 같이 타인을 맹목적으로 따라가는 것이 아닌 내 인생에서 중요한 요소들을 주관적으로 판단하며 의미를 찾고 싶고 잃어버린 주체성을 찾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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